“우울증은 마음의 병이다.”
이 표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연 정확할까요? 오늘날의 신경과학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뇌 회로의 기능적 이상에서 비롯된 ‘신경학적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뇌의 감정 회로가 무너질 때
우울증 환자들의 뇌를 보면, 특정 영역에서 구조적 또는 기능적 변화가 반복적으로 관찰됩니다.
대표적인 뇌 부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전두엽 피질 (Prefrontal Cortex)
- 사고, 판단,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
- 우울증에서는 활동 저하가 두드러지며, 감정 통제가 어려워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됨
2. 해마 (Hippocampus)
- 기억과 학습, 감정 처리에 관여
- 구조적 위축이 흔하게 발견되며, 정서적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렵게 만듦
3. 편도체 (Amygdala)
- 공포, 불안 등 감정의 ‘알람 센터’
- 우울증 환자에서 과활성화되어, 사소한 자극에도 과도한 불안을 느끼게 함
이러한 뇌 회로의 불균형은 우울증의 핵심 증상인 무기력감, 죄책감,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등을 유발합니다.
반복되는 생각의 굴레, ‘자기 반추’와 DMN
우울증에서는 “왜 나는 이럴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힘들까”라는 반복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를 자기반추(rumination)라고 합니다. 최근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이 자기 반추와 관련 깊은 뇌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바로 기본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입니다.
- DMN은 우리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작동하는 네트워크입니다.
- 우울증 환자에서는 이 DMN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고, 그 결과 내면의 부정적 사고에 머물게 만듭니다.
즉, 뇌가 자동으로 ‘자기비난’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가는 것이죠.
감정도 뇌의 회로로 느껴진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 속 전기신호, 신경전달물질, 회로 연결의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 도파민이 부족하면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고,
-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불안과 무기력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뇌 안의 감정 회로가 정보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뇌에서 시작된 문제라면, 해결도 뇌에서부터
우울증은 신경학적 기반이 분명한 질환인 만큼, 최근에는 뇌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치료법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 뇌 자극을 통해 회로를 ‘재가동’하는 경두개 자기자극술(TMS)
-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빠르게 작용하는 케타민 치료
- 감정 회로의 인지 왜곡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CBT) 등
이들은 모두 ‘뇌를 회복시킨다’는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약물치료 이상으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우울증은 더 이상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뇌 속의 감정 회로가 약해졌고, 다시 회복이 필요한 시기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과학적 이해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이고 따뜻한 치료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노산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하며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에 스스로를 점점 더 몰아붙이게 되었습니다. 작은 실수에도 쉽게 자책했고, 그 감정은 쌓여 어느새 밤에 잠드는 것조차 어려운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논문을 공부하면서 제가 왜 쉽게 잠들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우울한 감정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시리즈를 구성해보려 합니다. 저처럼 육아와 삶 사이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던 분들에게, 이 글들이 조금이나마 치유의 시작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수면과 생체리듬은 우울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주제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 참고문헌
Li, Z. et al. (2021). Major Depressive Disorder: Advances in Neuroscience Research and Translational Applications. Neuroscience Bulletin, 37(6), 863–880.